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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년도별 정리 (1900 ~ 1944)
    공무원/한국사 2021. 11. 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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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C]

    (1900)

    - 을미의병이 고종의 의병해산 권고에 따라 자진 해산했지만 농민들은 해산을 거부하면서 활빈당을 조직(대한사민논설),

    독도-칙령41호 반포, 울릉도를 울릉군, 관할도서로 독도 명시

    - 서북 철도국 설치: 경의선 철도공사를 시도했다 실패

    - 일본이 직산(충청도) 광산 채굴권 획득

    - 영국이 은산(평안도) 광산 채굴권 획득

    - 활빈당 조직: 대한사민논설

    - 한성중학교 설립

    - 한성전기회사가 서울에 가로등 설치

    - 광제원: 관립 신식 의료기관 -> 대한의원으로 개편(1907), 현재 서울대 부속병원

     

    (1901)

    - 지계아문 설치

    - 덕수궁 중명전 설립: 을사늑약 체결장소

     

    (1902)

    - 이범윤을 간도관찰사로 파견

    - 민가에 전화가 확산됨

    - 손탁호텔 건립: 최초 근대식 호텔, 정동구락부 모임장소

     

    (1903)

    - 간도에 북변간도관리사 이범윤 파견, 연해주에 해삼위 통상 사무관 설치

    - 용암포 사건: 러시아가 용암포를 불법으로 점령

    - 대한제국 정부의 공식 해외 이주 -> 하와이 사탕수수, 파인애플 농장 노동자로 생활

     

    (1904)

    - 1: 고종의 중립화 선언

    - 2: 러일전쟁 발발 -> 일본의 대러 선전 포고

    - 한일의정서 체결 ->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우세해짐

    한일의정서
    - 충고권
    - 3국과 조약 체결금지
    - 군사기지 사용권

    - 8: 1차 한일협약 (내정간섭으로 고문정치 시작, 외교고문 스티븐스, 재정고문 메가타가 대한시설강령 시행)

    - 보안회(애국계몽운동/보국안민회):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철회 운동을 해서 성공하고 자주적 황무지 개간 위해 농광회사를 설립 -> 일본의 압력으로 해산됨 -> 1908. 일제가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설립

    - 대한매일신보 창간; 순한글, 영문판, 국한문 혼용체 신문, 베델과 양기탁이 발행, 항일의병운동에 호의적으로 항일언론을 강력히 함, 국채보상운동 후원, 고종의 을사늑약 무효 친서를 게재함, 신민회 기관지 역할, 총독부 기관지일 매일신보로 전락(1910)

    - 프랑스가 경의선 부설권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 양도

     

    (1905) 

    - 일본이 러일 전쟁 중 독도를 시네마현에 편입

    - 7: 가쓰라,태프트 밀약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한국)

    - 8; 2차 영일동맹(영국은 인도, 일본은 한국)

    - 9: 러시아가 항복하면서 러일 전쟁 종결 -> 포츠머스 강화조약 체결(일본의 한국지배에 대한 러시아의 국제적 묵인 약속)

    - 11: 을사늑약(= 2차 한일협약) 체결(외교권 박탈-> 장인환과 전명운이 샌프란시스코에 의거(1908), 통감부설치(=외교부), 통감부설치(=외교부), 통감부와 각 지방에 이사청 설치, 한국 주재 외국 공사관 철수 하지만 실제론 철수하지 않음)

    - 을사늑약 반대 투쟁: 고종의 을사늑약 부인 친서 발표(대한매일신보에 게재), 황성신문에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게재, 민영환과 조병세, 홍만식 자결, 헐버트를 미국에 특사 파견하지만 미국은 무시, 헐버트 건의로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지만 실패, 나철과 오기호가 5적 암살단을 조직하고 1909에 대종교 창시

    - 을사의병: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 폐기와 친일 내각타도를 요구, 최익현과 민종식, 최초 평민 의병장인 신돌석을 시작으로 다수 출현, 산악유격투쟁 활발히 전개

    - 헌정연구회(애국계몽운동): 윤효정, 이준이 조직, 의회정치를 주장(독립협회 계승) -> 입헌군주정, 일진회 친일 행위를 규탄하는 과정에서 해산

    - 재정고문 메가타의 경제정책으로 화폐정리사업 시행: 백동화 남발로 인한 물가상승과 제1차 한일협약에 의해 시행, 내장원 폐지, 황실재정해체, 일본 제일은행의 성장, 국내 민족은행 설립(조선, 한성, 천일은행), 전환국 폐지, 백동화를 일본 제일은행권 화폐로 교환하고 대한제국 화폐 발행권을 박탈함 -> 1907. 일본의 차관제공으로 누적차관 1300만원, 한성은행과 천일은행의 몰락, 어음과 대부업의 현금회수증가로 전황이 발생하여 일시적 경제공황을 겪음, 제일은행권의 본위화폐화가 일어나고 금본위 화폐제 실시

    - 보성학교: 이용익이 서울에서 설립

    - 양정의숙: 엄주익이 서울에서 설립

    - 경부선: 러일 전쟁 중 일본이 군사적 목적으로 부설함

    -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가 신일세력과 결별 후 동학을 개편

     

    (1906)

    - 대한자강회(애국계몽운동): 윤효정, 장지연이 조직, 전국 25개에 지회 설치, 강연회, 토론회, 월보간행, 산업부흥 등을 통해 국권회복운동 전개, 1907년에 고종의 강제퇴위 반대운동을 주도하다 해산

    - 일본이 토지가옥 증명규칙을 만들고 일본인의 토지 소유 합법화함

    - 만세보 창간(~1907): 손병희와 오세창이 발행, 천도교 기관지, 아이와 여성의 인권 신장을 강조, 이인직의 혈의누를 게재, 이인직이 인수하여 대한신문으로 개편(친일화)

    - 경향신문 창간(~1910): 안세화 주도, 프랑스신부가 간행한 것으로 내세움, 천주교 기관지

    - 휘문의숙: 민영휘가 설립

    - 숙명여학교: 엄귀비가 서울에서 설립

    - 서전서숙을 이상설이 북간도에 설립

    - 경의선: 프랑스가 부설권 획득을 포기하고 대한 철도 회사 등이 부설시도 했지만 실패해서 일본에게 양도함

     

    (1907)

    - 을사조약 이후 간도파출소 설치

    - 헤이그특사 파견 -> 고종의 강제 퇴위, 순종 즉위

    - 7: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한일신협약
    - 통감의 권한 강화(고위관리 추천과 임명권)
    - 일본인으로 차관을 교체하고 정치를 시작
    - 군대 강제해산 각서
    - 신문지법, 보안법 제정

    - 종의 강제퇴위 반대운동을 주도하다 대한자강회 해산

    - 정미의병: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 강제해산에 반대하여 일어남-> 이인영과 허위가 13도 창의군을 결성 -> 1908. 서울진공작전(양주 점령해서 동대문까지 진격하지만 실패 후 13도 창의군은 해산)

    -> 평민 의병장 홍범도, 해산한 군인들이 참여하여 일으킴

    -> 각국 영사관에 교전단체승인 요청했지만 실패

    -> 1909. 호남의병화 -> 일본의 남한 대토벌 작전 전개하고 성공함 -> 서북의병화, 국외 독립군

    - 신민회(애국계몽운동, ~1911): 회장 윤치호, 부회장 안창호, 양기탁, 이승훈, 안창호, 이회영, 이동휘, 신채호, 박은식 등이 비밀결사로 조직하고 민주공화정을 최초로 주장함 / 독립전쟁준비론(애국계몽+항일무장투쟁) -> 만주 서간도에 삼원보 등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 평양에 대성학교를 안창호가, 정주에 오산학교를 이승훈이 설립, 서북흥학회에서 활동 / 평양에 자기회사, 평양대구에 태극서관, 방직공장, 연초공장 설립해서 독립운동자금 자체를 조달함 / 조선광문회 후원, 대한매일신보를 발간(신민회 기관지 역할) / 1909.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 암살, 1910. 안악사건조작(안명근의 데라우치 암살 미수사건), 1911.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 해체

    -> 신민회는 표면적으로 문화적, 경제적 실력 양성운동을 전개했고 내면적으론 국외독립군 기지의 건설에 의한 실력 양성을 기도함

    - 국채보상운동: 일본의 차관강요로 외채 증가함에 의해 일어난 운동, 대구에서 김광제, 서상돈 주도로 시작 -> 서울에서 국채보상기성회가 설립되어 전국적으로 확대(양기탁) ->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황성신문, 제국신문의 후원-. 금연과 금주 실시 -> 일진회, 통감부의 방해로 실패하고 양기탁 구속

    - 신문지법 제정

    - 국문연구소 설립: 주시경, 지석영 중심 -> 국문연구의정안 제출, 주시경의 국어문법 편찬, 유길준의 조선문전과 대한문전 편찬 -> 조선어연구회(1921) -> 조선어학회(1931)로 개편

    - 이인직의 은세계

    - 한인합성협회와 공립협회를 통폐합

     

    (1908)

    - 13도 창의군이 서울진공작전을 함, 외교권 박탈

    - 외교권이 박탈되서 장인환과 전명운이 샌프란시스코에 의거

    - 일제가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설립

    - 평양에 대성학교를 안창호가 설립

    - 정주에 오산학교를 이승훈이 설립

    - 북간도에 명동학교를 김약연이 설립, 1기 졸업생 윤동주

    - 사립학교령 반포

    - 신문지법 개정

    - 원각사 설립: 이인직의 치악산, 은세계 공연, 최초의 서양식 극장

    - 독사신론 저술(신채호): 대한매일신보에 연재, 일본 식미주의 사학에 대응

    -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남선, 최초의 신체시

     

    (1909)

    - 13도 창의군의 호남 의병화

    -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는 간도협약 체결

    - 헐버트 건의로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지만 실패(영일간의 방해와 외교권이 박탈된 상태이므로)

    - 7: 기유각서(사법권 박탈, 감옥사무권 박탈, 통감부에 사법청 설치)

    -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

    - 자혜의원: 도립병원 10개 설립

    - 밀산부 한흥동: 거대한인타운에 한민학교 설립

    - 국민회: 박용만과 이승만, 신한미보 발행, 이승만이 위임통치청원서 제출

     

    (1910) 국권피탈, 무단통치

    - 독립운동가 색출, 처단, 위생관리, 범죄즉결례

    - 6: 경찰사무권 박탈

    - 8: 한일병합조약(경설국치, 국권강탈)

    -> 조선총독부 설치: 일왕직속기구

    -> 중추원 설치: 총독부의 자문기구, 명목삭 한국인 임명, 삼일운동 전까지 한번도 소집되지 않음

    - 안악사건 조약

    - 덕수궁석조전 건설: 르네상스식 건물

    - 10: 조선광문회 활동(박은식, 최남선 중심으로 설립, 민족고전을 정리하여 간행)

    - 단군교가 대종교로 개칭

    - 기본권 박탈: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박탈 -> 일진회도 해산 / 교사가 제복과 칼 작용

    - 토지조사군 설치

    - 회사령 제정: 회사 설립시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함, 민족자본 성장억제 목적

    - 국민회 -> 대한인 국민회

    - 멕시코에 숭무학교 설립: 독립군 양성

    -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이동휘가 만든 최초 한인 사회주의 단체

    - 블라디보스토크에 민정자치 기구 설립: 성명회

    - 블라디보스토크에 13도 의군: 망명 정부 수립시도, 의병부대

     

    (1911)  무단통치

    - 신민회 해체: 105인 사건으로 인해 해체됨

    - 산림령, 어업령

    - 서간도에 삼원보 중심으로 민정자치기구로 경학사 -> 부민단

    - 서간도: 신흥강습소

    - 북간도에 중광단: 대종교 본사

    - 블라디보스토크에 민정자치 기구 설립: 권업회

    - 1차 조선교육령

    -> 한국인 보통학교 수업 6년에서 4년으로 단축, 일본인은 6

    -> 실업, 전문학교만 실시, 대학미설치

    - 사립학교 규칙: 일제가 사립학교 교육 통제하기 위해 만듦

    - 중광단 조직

    - 일제가 사찰령을 제정

     

    (1912) 무단통치

    - 조선태형령 제정: 조선인에게만 적용

    - 경찰범 처벌 규칙 제정

    - 토지조사사업(~1918) : 토지조사령 공포

    - 독립의군부(국내 비밀결사) : 의병장 임병찬이 고종의 밀명을 받아 조직, 복벽주의, 의병운동 계승, 국권반환 요구서 작성해서 총독부에 보내려다 발각되서 해체됨

    - 상하이에 동제사: 박은식, 신규식, 조소앙이 만든 비밀결사독립운동 단체

     

    (1913) 무단통치

    - 송죽회(국내 비밀결사) : 평양 숭의 여학교 교사와 학생으로 구성

    - 대한광복당; 경북 풍기에서 채기중이 의병 조직

    - 서간도: 신흥강습소 -> 신흥 중학

    - 북간도에서 간민회 설립: 민정자치 기구

    - 샌프란시스코에 흥사단 조직: 안창호가 조직, 미주 동포들이 애국게몽운동 전개

     

    (1914) 무단통치

    - 경원선: 일본이 부설

    - 기성단(국내 비밀결사)

    - 하와이에서 대조선국민군단 조직: 박용만이 조직, 독립군 양성

    - 대한광복군 정부 수립

     

    (1915) 무단통치

    - 조선광업령

    - 조선국민회(국내 비밀결사) : 대조선 국민군단의 국내지부

    - 선명단, 자립단, 조선산직 장려계 (국내 비밀결사)

    - 대한광복회(국내 비밀결사): 대한광복당 + 조선국권회복단 일부가 모여 만들어짐, 박상진(총사령관), 김좌진(부사령관), 의연금모금, 친일부호 습격, 우편열차 습격, 북로군정서 탄생, 사관양성소 건설

    - 조선국민회 설립

    - 상하이; 신한 혁명단: 대동단결선언문 발표((최초독립선언문), 대동보국단: 박은식과 신규식이 조직, 신한 혁명당과 연계

    - 한국통사(박은식): 현재사 중심의 연구, 나라는 형이요 역사는 신이다 -> 역사를 지키면 나라를 잃어도 다시 만들 수 있음

     

    (1916) 원불교: 박중빈 창시

     

    (1917) 무단통치

    - 전로 한족 중앙 총회

    - 블라보스토크에서 전로 한족중앙 총회가 열림

    - 러시아 혁명으로 레닌의 약소 민족 해방운동 지원선언

    - 대동단결선언문: 신한 혁명당

    - 무정 : 이광수, 최초 장편소설

     

    (1918) 무단통치

    - 임야조사령

    - 중광단이 무오독립선언서 발표

    - 신한 청년당 조직: 여운형 중심, 신한청년보 발간, 임정의 산파 역할, 파리 강화회의에 외교 특사로 김규식을 파견해서 독립청원서를 제출

    - 무오 독립선언: 만주에서 조소앙이 집필, 무장독립전쟁을 통한 독립주장, 대종교 계열의 중광단 중심

    - 1차 세계대전종전

    - 서당규칙: 일제가 개량 서당을 통제

     

    (1919) 민족분열통치(친일파 양성)

    - 1: 파리 강화 회의 개최, 윌슨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족자결주의를 주창함 (패전국)

    - 의민단 조직: 간도에서 조직, 청산리 대첩에 참여

    - 서간도: 신흥 중학-> 신흥무관학교(독립군 양성)

    - 간민회 -> 대한국민회 : 대한독립군(홍범도)가 지원, 국민회군(안무)가 직할 부대임.

    - 북로군정서군

    - 대한국민의회가 소집됨: 손병희가 대통령으로 선출

    - 28독립선언: 도쿄에서 이광수가 집필, 조선청년 독립단이 조직, 선언서와 결의문 발표

    - 기미독립선언서 작성(최남선)하여 전국 각지로 배부한 후 고종의 인산일을 기점으로 3·1운동 발발 ->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 낭독하고 만세 부르고 자진 체포, 학생 시민들이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낭독하고 만세 시위 전개, 민족대표자와 학생 중심으로 비폭력만세시위 -> 학생 중심, 지방도시로 확산 -> 농민 참여, 농촌 각지로 확산, 폭력 투쟁으로 변모, 국외로 확산, 해외에서 한인자유대회가 일어남 ->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 유관순 열사순국 -> 일제통치방식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뀜, 대한미국 임시정부 수립 계기, 만주 무장투쟁의 활성화, 학생운동 , 반제국주의운동의 신호탄

    - 헌병경찰제도 -> 보통경찰제도

    - 3: 대한국민의회(대통령 손병희, 국무총리 이승만, 최초의 임시정부)

    - 4: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국무총리 이승만), 신한청년당의 영향을 받아 수립함 / 한성정부

    - 8: 1차 개헌 -> 대통령중심제

    - 9: 대한미국 임시정부 수립

    대한미국 임시정부
    -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 대한국민의회와 한성정부는 해산
    - 삼권분립체제(최초공화정부): 입법(의정원), 행정(국무원), 사법(법원-> 대한국민의회의 헌법 계승)
    - 연통제: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연락조직
    - 교통국: 비밀 통신망, 백산상회(부산), 이륭양행(만주 단듕)
    - 군자금 모금: 의연금, 애국공채발행
    - 군사활동: 광복군 사령부 창설 -> 광복군 총영 -> 참의부에 흡수(육군주만참의부 조직) -> 한국광복군 창설
    - 외교활동: 파리위원부(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김규식이 제출), 구미위원부: 미국에 설치한 대사관, 이승만
    - 문화활동: 독립신문 발간(발행인: 이광수), 사료편찬소 설치(안창호와 이광수가 설치, 소장: 박은식), 학교설립(인성학교, 삼일중학)

     

    - 의열단 : 만주 길림에서 김원봉과 윤세주 등이 조직

    - 노인동맹단(의열단체): 강우규가 총독 사이토에게 투탄

     

    (1920) 민족분열통치(친일파 양성)

    - 회사령 철폐(물산장려운동): 신고제로 전환, 경성방직주식회사와 평양 메리야스 고무신 공장 설립

    - 산미증식계획(~1934):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급속한 공업화로 일본 곡물 생산량 하락하고 쌀값 폭등하면서 일본의 쌀값 안정화를 위해 조선의 쌀을 수입함->화학비료사용과 종자개량으로 쌀 생산량 증대시키고 수리조합 설립함, 증산목표량 달성하지 못하고 수탈 목표량은 달성하면서 조선 내 쌀값 폭등하면서 1인당 쌀 소비량이 감소하고 만주로부터 잡곡 수입이 증가 -> 식민지 지주제 강화, 소작쟁의 비납, 농민의 해외이주 증가

    - 조선, 동아일보 간행 허용

    - 의열단 박제혁: 부산 경찰서 투탄 / 의열단 최수봉: 밀양 경찰서 투탄

    - 6: 봉오동전투 ->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이 주축, 독립군이 승리

    - 10: 훈춘사건: 만주지역 독립군 소탕을 위해 일본이 조작한 사건 -> 일본이 만주 마적대를 매수해 일본 관공서 습격을 요청 > 관공서 습격 -> 독립군 소행으로 조작 -> 일본이 만주로 출병

    - 10: 청산리 전투 -> 백운평, 천수평, 어랑촌, 완루구, 고동하,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최진동의 국무도독부군, 안무의 국민회군, 천주교 대한의민단 vs 일본군

    -> 독립군 승리

    - 독립군 이동: 북만주 밀산부로 이동

    - 통합부대 결성: 밀산부에서 대한독립군단 결성(총재: 서일)

    - 조선청년연합회: 물산장려운동 참여

    - 조선여자교육회가 여성운동을 함

    - 관세철폐 움직임이 보여서 물산장려회를 조직(조만식, 평양)

    - 조선교육회 중심(이상재)

    - 한국독립운동지혈사(박은식): 국혼강조, 3·1운동 과정 서술

    - 극예술협회

     

    (1921)  

    - 일본군이 독립군을 계속 추격해서 독립군들은 소련 자유시로 이동

    - 적색군의 용병화: 독립군 내부의 지휘군 다툼

    - 6: 자유시참변(=흑하사변) -> 독립군 세력이 와해됨

    - 연통제, 교통국 발각되어 해체

    - 의열단 김익상: 조선총독부 투탄

    - 서울청년회: 사회주의 청년들이 조직

    - 천도교소년회(아동 운동)

    - 조선어연구회(국문연구소가 조선어연구회로 개편)

    - 조선불교유신회: 불교정화운동, 불교 교단의 친일화에 대항

     

    (1922)

    - 의열단 김익상: 상하이 황포탄 의거

    - 독립군 재정비: 대한독립군단 재결성 -> 대한통군부 조직

    - 5: 천도교 소년회 중심으로 아동 노동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어린이날을 제정

    - 2차 조선교육령 공포

    - 민립대학 기성회 결성

    - 2차 조선교육령

    -> 보통학교(일본어 비사용자) 수업 연한을 6년으로 연장, 일본어 사용자는 소학교 다님

    -> 조선인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지만 실질적으로 교육 차별이 존재하고 실업교육에 치중됨

    -> 조선어, 조선사 필수 과목화(1910년대에도 필수였음)

    -> 민립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남, 민립대학기성회 결성

    - 자작회(물산장려운동 학생중심)

    - 23·1운동 계획: 자주독립선언문 발표

     

    (1923) 민족분열통치(친일파 양성)

    - 대한통군부 분열: 통의부, 의군부 + 참의부(육군주만참의부, 임시정부직할부대), 정의부(1924, 남만주 유역), 신민부(1925, 북만주 유역) -> 3부 성격: 군사기관+민정자치 기관, 공화주의적 자치 정부

    - 일본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 물산장려운동 확산에 영향

    -> 조선물산장려회, 토산애용부인회, 자작회

    - 국민대표회의 개최: 창조파(신채호, 임시정부해체, 무력항쟁 강조) vs 개조파(안창호, 임시정부개혁, 국민대표회의 실패 후 의열단과 제휴) vs 현상유지파(임구, 임시정부 유지, 불참)

    -> 임시정부 존속, 하지만 창조파와 무장투쟁론자가 대거 이탈 후 비판 수위가 높아짐

    - 의열단에서 조선혁명선언: 신채호가 작성, 민중의 직접 혁명 주장

    - 의열단 김상옥: 종로경찰서 투탄

    - 불령사(의열단체): 박열이 일본 황태자 폭살 시도하지만 실패

    - 잡지 어린이 발간

    - 조선형평사: 진주에서 이학찬이 조직, 전국에 지부 설치, 사회적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신분해방운동 전개 -> 민족해방운동으로 발전 -> 일제의 탄압이 심화되면서 대동사로 개칭(1936) -> 친일화

    -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당국의 유언비어로 6천여명 제일동포가 학살당함(관동대학살)

    - 조선혁명선언: 의열단 강령, 민중직접혁명의 중요성 강조

    - 토월회

     

    (1924) 민족분열통치(친일파 양성)

    - 초등교육, 기술교육 위주인 경성제국대학 설립->친일파 양성

    - 의열단 김지섭: 일본 도쿄 궁성 투탄

    - 조선청년총동맹: 민족주의+사회주의 -> 청년계의 민족유일당 운동

    - 조선여성동우회: 사회주의 여성단체 -> 여성운동함

    - 경성 제국 대학 설립(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대학교) : 민립대학 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설립,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고등교육을 목적으로 함

    - 조선사연구초 저술(신채호): 묘청의 난을 평가

     

    (1925) 민족분열통치(친일파 양성)

    - 치안유지법 제정: 사회주의자,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수단

    - 임시의정원에서 이승만 탄핵 -> 박은식 추대(2대 대통령)

    - 2차개헌: 국무령 중심의 내각책임제로 개헌

    - 다물단(의열단체): 김창숙이 친일파 밀정 김달하

    - 병인의용대(의열단체)

    - 미쓰야협정: 재만 한인 단속 방법 협약 -> 독립군 탄압 협정 -> 3부 활동 위축

    - 조선사편수회 조직: 총독부 산하단체, 식민사관을 토대로 조선사 편찬(1938)

    - 김소월의 진달래꽃

     

    (1926)

    - 의열단 나석주: 동양 척식 주식회사, 조선 식산은행 투탄

    - 의열단 단원들이 황포군란 학교에 입교해서 군사, 정치 교육을 받음

    - 3부 통합운동(~1929)

    - 4: 정우회 창설

    - 6: 6·10 만세운동

    -> 순종의 서거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청년과 학생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일어난 운동,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 학생단체와 사회주의 계열과 천도교 구파 연합해서 순종 인산일에 대규모 시위를 계획함 -> 치안유지법에 의해 탄압받고 계획이 발각되어서 학생단체 시위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이후 대규모 단체시위로 전개되고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학생이 투옥됨

    -> 의의: 독서회(비밀결사)조직의 계기, 학생운동의 성장 -> 광주 학생항일운동에 영향 / 미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연대의 계기를 마련하여 민족 유일당 운동의 신호탄을 쏨, 신간회 창립에 기여

    - 7: 조선만흥회결성(서울교육회+서울청년회+조선물산장려회)

    - 9: 조선어연구회에서 가갸날(한글날)제정

    - 10: 안창호가 한국독립유일당 북경 촉성회 창립

    - 11: 정우회 선언

    -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한용운의 님의 침묵

    - 나운규의 아리랑

     

    (1927)

    - 3차개헌: 국무위원(장관)중심의 집단지도체제로 개헌

    - 근우회: 여성계의 민족 유일당, 신간회의 자매단체, 김활란 중심, 기관지인 근우 발행, 강연회와 토론회 개최, 여성 의식 계몽 운동 전개 -> 신간회 해소와 함께 해체됨

    신간회
    조선인 본위 교육 주장,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 여성 차별 철폐 주장, 동양 척식 주식회사 폐지 주장, 원산노동자 총파업, 최저임금제 요구, 수재민 지원, 일본인의 조선 이민을 반대, 광주학생항일운동 지원

    - 신간회 설립

    -> 3부 통합운동에 영향을 줌

    ->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와 정우회가 합쳐짐

    -> 강령: 민족대단결, 기회주의자 배격 정치적 경제적 각성

    ->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의 신간회 합류로 조직의 우경화, 코민테론의 노선변화, 사회주의자들의 농민,노동 운동의 약화

    -> 12월 테제 발표: 기존 단체 해산하여 농민, 노동운동을 전개하라고 지령을 내림 -> 민족주의자들과의 통일 전선 운동 방침을 폐기하고 신간회가 해소됨

    - 조선어연구회에서 잡지 한글 창간

    조선노농총동맹->조선노동총동맹+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리되고 조선농민총동맹은 자작농도 참여

     

    (1928) 민족분열통치(친일파 양성)

    - 신은행령 제정(물산장려운동): 한국인 소유의 중소 규모 은행을 일본 은행에 강제 합병

     

    (1929) 민족분열통치(친일파 양성)

    - 세계대공황 -> 일본 군부 쿠데타 -> 2차 세계대전 발발

    - 문자보급운동(~1935)(문맹퇴치운동): 조선일보 주도, 한글원본 간행하고 보급하고 조선어학회를 지원

    - 광주학생항일운동

    -> 식민지 채불 교육에 대한 학생의 불만, 성진회와 독서회 등의 학생 단체 조직, 동맹휴학 빈발로 인해 일어남

    -> 항일학생간의 충돌 발생 -> 한국인에게 불리한 편하적인 사법 처리 -> 한국 학생들의 불만 고조 -> 광주에서 가투시위 시작 -> 독서회의 지도 아래 광주, 전라도 지역으로 확산 -> 신간회의 지원으로 전국적인 규모의 항일투쟁을 확산

    -> 의의: 3·1운동 이후 최대규모의 미족운동, 식민지 교육철폐와 한국인 본위교육확립을 요구하며 시작된 운동이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 발전

     

    (1930)

    - 남화 한인 청년 연맹(의열단체): 무정부주의 단체

    - 청구학회 조직: 경성제국대학교수와 조선사편수회 간부가 중심이 되어 조직, 한국사 왜곡과 일제의 식민사관 보급에 노력, 청구학총 발간

     

    (1931) 민족말살통치

    - 만주사변, 만보산 사건(저수지 수로 갈등, 한중유혈충돌 일본이 한중 분열 정책으로 이용) -> 한인애국단 조직(김구)

    한인애국단 ; 국민대표회의 결렬 이후 임시 정부의 침체 독립운동 침체 되어서 임정의 위상을 높이고 독립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조직 -> 임정에 대한 일본군의 공격이 강화되어 임정이 이동하게 됨,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정 지원, 중국 군관 학교 내에 한인 특별반 설치 -> 한국광복군 창설 계기가 됨

    - 전시경제체제

    -> 병참기지화 정책: 조선을 군수물자 생산 기지화 시킴

    -> 남면북양정책: 남부는 면화를 재배하고 면직물공장을 세우고 북부는 양 사육해서 이후 중화학 공업을 추가로 육성

    - 황국신민화 정책

    -> 내선일체 강조

    -> 신사참배와 궁성 요배 강요

    - 3부통합운동으로 2개로 통합 -> 혁신의회(1928), 국민부(1929) -> 국민부는 조선혁명단(양세봉), 혁신의회는 한국독립군(지청천)으로 바뀜

    - 한중연합작전

    -> 조선혁명단 + 중국의용군 -> 영릉가전투, 흥경성 전투 -> 양세봉 암살 후 해체(1934)

    -> 한국독립군 + 중국호로군 -> 쌍성보 전투, 사도하자 전투, 대전자령 전투, 동경성 전투 -> 지청천이 중국 관내로 이동하고 미족혁명당에 참여, 중국군관학교에서 한인특별관 교관을 맡음

    - 브나로드 운동(문맹퇴치운동)(~1934): 학생중심, 동아일보가 주도,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

    - 조선상고사(신채호):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 -> 일제 시대의 투쟁을 두려워 말라

    - 신간회 해체

    - 조선어학회: 국어 연구

    - 극예술연구회

     

    (1932) 민족말살통치

    - 농촌진흥운동: 조선소작조정령

    - 이봉창의거: 일왕마차 투탄사건

    - 윤봉길의거: 홍카우 공원 의거

    -> 임정 이동 시작

    - 의열단 김원봉이 조선혁명간부학교를 난징에 설립(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음)

     

    (1933)

    - 한중연합작전와해

    -> 추수투쟁 춘황투쟁

    -> 유격투쟁 단체 조직: 빨치산 동북인민혁명군 결성(김일성)

    -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

     

    (1934) 민족말살통치

    - 농촌진흥운동: 조선농지령

    - 양세봉 암살

    - 진단학회 (실증주의적 사학)

    -> 청구학회의 한국사 왜곡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

    -> 이병도와 손진태의 중심

    -> 진단학보 발간, 식민사학에 소극적 대항

     

    (1935) 민족말살통치

    - 의열단이 난징에 민족혁명당 결성: 중국 관내의 독립운동 단체 연합,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통합 (+조소앙의 한국독립당, +지청천, -임정불참 김구

    - 김구가 한국국민당 창당

    - 조소앙이 민족혁명당 이탈하여 한국독립당 재건

    - 지청천은 조선혁명당 창당

    - 민족혁명당은 조소앙과 지청천, 김구가 이탈 후 조선민족혁명당으로 이름을 변경

    -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문맹퇴치운동 중단

     

    [1936] 민족말살통치

    - 조선 사상범 보호관찰령 제정: 독립운동가에 대한 감시 강화

    - 유격투쟁단체조직: 동북항일연군, 조국광복회(국내 지부)

    - 동아일보에서 손기정 일장기 삭제사건 -> 동아일보탄압

    - 안익태의 애국가

     

    (1937) 민족말살통치, 중일전쟁

    - 황국신민서사 암송 강요

    - 전시동원체제: 중일전쟁발발로 전시체제 강화하고 국가총동원법 제정

    - 동북항일연군이 보천보전투를 일으킴

    - 한국국민당과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이 모여 한국광복운동단체 연합회를 결성

    - 조선민족혁명당은 조선민족전선연맹으로 이름을 바꿈

    -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까레이스키, 고려인)

     

    (1938) 민족말살통치

    - 2; 지원병령(징병)

    - 4: 국가 총동원법 제정

    -> 인적, 물적 자원수탈: 산미증식계획재개, 놋그릇, 농기구 공출제, 식량 공출제, 식량배급제 시행

    -> 군사물자동원체제: 강제징용, 징병, 정신대, 공출제, 국방 헌금 /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결성

    - 조선민족전선연맹이 조선의용대를 결성함

    -> 중국 관내 최초 한인 무장투쟁 단체

    -> 중일전쟁에 참전 (비전투 첩보 활동)

    -> 중국 국민당의 지원

    - 3차 조선교육령

    -> 보통학교, 소학교를 (심상) 소학교로 변경

    -> 조선어, 조선사 수의 선택 과목화, 사실상 폐지

    -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관을 토대로 조선사 편찬

     

    (1939) 민족말살통치

    - 창씨 개명 강요(조선민사령 개정)

    - 징용령

     

    (1940) 민족말살통치

    -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임시정부 충칭에 도착

    - 4차 개헌: 주석(김구)중심의 단일지도체재로 개헌

    -> 임정의 여당 설립: 한국독립당 (임정의 여당, 중국관내의 민족주의 3개의 정당이 연합-김구의 한국국민당+조소앙의 한국독립당+지청천의 조선혁명당)

    - 한국광복군 창설: 한국독립군이 합류(총사령관 지청천)

    - 국민총력 운동: 국민 총력 조선 연맹 조직, 황국신민 정신의 고양, 징병 독려

    - 조선, 동아일보 등의 한글신문 폐간

    - 산미증식계획재개

    -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바뀜

    -> 산하: 애국반 결성

    - 조선어학회에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발표

    - 조선영화령을 지정해 민족적 영화 탄압

     

    (1941)

    - 윤세주의 조선의용대->조선의용대화북지대로 이름을 바꿈 ->호가당전투 -> 옌안에 도착해서 조선공산주의 세력과 합류하여 화북조선청년연합회 결성

    - 한국독립당에서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건국강령으로 채택

    -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 독립 운동가는 언제든지 사상범으로 구금

    -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

    - 국민근로보국령

    - 한국독립당의 건국강령 발표

     

    (1942)

    - 김원봉의 조선의용대->한국광복군으로 합류하고 화북조선청년연합회->조선독립동맹(김두봉)으로 이름 바꿈, 산하 조선독립군부대-조선의용군(윤세주), 조선의용군은 중국팔로군과 연합해서 항일전투를 수행(태항산전투)

    - 조선독립동맹이 건국강령발표

    -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조선어학회는 해산

     

    (1943)

    - 지원병령 -> 학도지원법령

    - 4차 조선교육령

    -> 수업연한 4년으로 축소, 조선어와 조선사 과목을 폐지

    -> 일본어 교육 강화, 전시동원 체제 강화

    - 11: 카이로회담 (미국-루즈벨트, 영국-처칠, 중국-장제스)

     

    (1944)

    - 조선건국동맹 결성(여운형, 좌우합작을 통한 건국준비활동)

    - 학도지원법령 -> 징병령

    - 여자 정신대 근무령

    - 조선건국동맹

    - 5차개헌(주석,부주석 지도체제

    - 조선건국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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